갈수록 깊어지는 ‘존엄사 딜레마’ _포커 테이블의 칩 리더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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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이 23일 국내 처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를 공식 시행했다. 의료계는 우선 이번 존엄사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처음으로 공식 시행된 만큼 국내에 연명치료 중단 형태의 존엄사 사례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존엄사에 대한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법률의 잣대로 의학적 처치를 결정함으로써 자칫 새로운 논란에 불만 댕길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존엄사의 관건은 인공호흡기를 떼어 낸 김 할머니가 자가 호흡을 통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문은 인공호흡기만 제거토록 했을 뿐 다른 의학적 처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또 다른 연명치료 중단 조치가 없다면 이 환자가 장기간 자가호흡을 통해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병원 측에서는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이후에도 일반적인 수액공급이나 영양공급 등의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마련한 3단계의 가이드라인에서도 인공호흡기를 떼어 낸 김 할머니는 현재 상태에서 `식물인간 상태지만 호흡이 스스로 가능한 환자'로 마지막 3단계에 속하게 된다. 인공호흡기를 떼기 전만 해도 김 할머니는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환자'였지만 이제는 처지가 바뀐 셈이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도 "아직은 2단계 상태지만 환자가 좋아지면 3단계도 될 수 있다"면서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2단계 환자의 경우 본인 또는 대리인이 작성한 사전의사결정서와 함께 가족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은 뒤 병원 윤리위원회를 거쳐 존엄사를 시행할 수 있지만 3단계에서는 아직까지 세부적인 지침이 없는 상태다. 반면 뇌사 환자와 여러 장기가 손상된 환자 등 죽음이 임박한 상태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1단계는 환자 가족들의 동의가 있고, 자체 윤리위원회에서 통과되면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병원과 가족 양측은 2단계에서 3단계로 옮겨가는 환자를 지금처럼 계속해서 병실이나 중환자실에 둘지, 아니면 품위있는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완화의료병동으로 옮길지 등을 고민해야 할 처지가 돼 버렸다. 병원이 법원의 판결과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를 시행했지만, 존엄사 시행 이후 새로운 고민만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존엄사 연구학자인 국립암센터 윤영호 기획실장은 "단순히 인공호흡기만 제거하는 것을 존엄사로 볼 수는 없다"면서 "진정한 존엄사는 김 할머니 경우처럼 예측이 불확실한 현 의료의 현실을 인정하고, 의료적 처치 이후 환자가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가족이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